박기서 별세 김구 암살범 안두희 응징(사건 정리)
🕊️ 박기서: 백범 김구 암살범 안두희 응징자 ,정의봉 사건과 이후의 삶 (1948–2025)
박기서(朴琦緖, 1948–2025)는 1996년 백범 김구 암살범 안두희를 둔기로 응징한 인물입니다. 그의 행동은 한편으로는 역사의 정의를 실현했다는 평가 속에 법적 논란도 불러일으켰습니다. 석방 이후 택시 기사로 살아온 그의 생애와 유지를 살펴봅니다.
1. 인물 소개
- 이름: 박기서(朴琦緖)
- 출생: 1948년 12월 9일 (음력 11월 9일), 전라북도 정읍
- 본관: 반남 박씨
- 사망: 2025년 7월 10일, 경기 부천의 병원(향년 77세)
- 직업: 전 버스 기사 및 노동조합 위원장 → 택시 기사
- 종교: 천주교(세례명 요셉)
- 가족: 배우자 , 1남 2녀
2. 안두희 응징 사건 (1996년 10월 23일)
✅ 사건 전말
1996년 10월 23일, 박기서는 백범 김구 선생 암살범 안두희의 자택을 찾아갑니다.
- 당시 박 씨는 ‘정의봉’이라 이름 붙인 약 40cm 몽둥이를 준비했고,
- 안두희를 몽둥이로 집중적으로 구타해 사망에 이르게 했습니다.
- 사건 직후 그는 자수했으며, 고해성사를 받은 뒤 자수를 감행한 기록이 남아 있습니다 .
출처:연합뉴스
✅ 범행 동기
- 박 씨는 안두희가 백범 암살범으로 사법 처벌을 회피했다고 믿었고,
- 자신이 “김구의 유지를 이어야 한다”는 역사적 소명의식을 갖고 범행을 저질렀다고 했습니다.
- “의로운 일을 했기에 후회 없다”고도 밝혔습니다.
3. 재판과 형량
- 검찰 구형: 징역 8년
- 1심(1997년 4월): 징역 5년
- 항소심(1997년 8월): 징역 3년으로 감형
- 대법원 확정(1997년 11월): 징역 3년 확정, “동기에 정당성 있어도 법 질서 위반은 용납될 수 없다”는 판결
4. 석방 이후 삶 및 활동
- 석방: 김대중 정부 대사면으로 1998년 3월 출소
- 생업: 2002년 개인택시 면허 취득 후 택시 기사로 근무
- 사회 기여: 효창공원 애국지사 묘역 복원 추진위원장을 맡고, 2018년 정의봉을 식민지역사박물관에 기증
5. 사회적 평가와 논란
✅ 긍정적 시선
- 의로운 응징: 일부에서는 그를 “의인” 또는 “제2의 독립운동가”로 칭송
- 공감 여론: 9,200여 명이 탄원서 제출, 격려금 및 위로편지 쇄도
- 민족정기 회복을 위한 상징적 행위로 평가되었습니다.
❌ 비판적 시각
- 사적 제재 비판: 일부에서는 "사법체계가 아닌 개인이 제재 행위를 한 것"이라며 법치주의 원칙을 강조
- 법체계 안정성 위협 우려: 사적 응징이 정당화될 경우 제2, 제3의 범죄 모방 우려도 제기되었습니다.
6. 별세 및 유족 정보
- 별세: 2025년 7월 10일 오전 0시 10분, 경기 부천 병원에서 지병으로 인해 향년 77세로 별세
- 빈소 및 장례 정보: 부천장례식장 7호실, 발인 2025년 7월 12일 오전 5시, 장지는 남양주 모란공원
- 유족: 배우자, 자녀, 사위 등
7. 박기서 사건이 남긴 의미
- 역사 정의와 사법정의 충돌: 그의 행위는 국가가 처리하지 못한 과거죄에 대한 개인의 응징으로, 정의재현에 대한 열망을 반영합니다.
- 법치주의와 사회 감정의 균형: 사법 체계가 무너질 때 사회적 공감이 법을 앞설 수 있다는 위험성도 제기했죠.
- 기억과 기록의 중요성: 정의봉의 박물관 기증 등은 역사의 기억을 사회적 자산으로 남기려는 시도였습니다.
⚠️ 김구 선생 암살 사건: 안두희의 총격과 은폐된 배경 (1949)
1949년 6월 26일, 백범 김구 선생이 자신의 집무실인 경교장에서 부하였던 안두희(安斗熙)의 총격으로 피살된 사건입니다. 당시 사건은 ‘한국독립당 내부 갈등’으로 축소됐지만, 이후 국민장으로 장례가 치러지며 진상 규명 움직임이 이어졌습니다.


🧑🏫 사건 개요
항목 | 내용 |
피해자 | 김구 선생 (1876–1949), 임시정부 주석, 독립운동가 |
가해자 | 안두희(安斗熙), 당시 육군 포병 소위, 한국독립당 당원 |
발생일시 | 1949년 6월 26일 |
장소 | 서울 서대문구 충정로 ‘경교장’ 내 |
원인 | 무장 소속·내부 갈등 또는 정치적 음모라는 두 가지 해석 존재 |


💥 사건 전개
- 총격
1949년 6월 26일 오후, 안두희가 김구가 자택이자 사무실로 사용하던 경교장 내에서 총 4발을 발사, 김구 선생을 심각하게 부상시킵니다. 곧 병원 이송되었으나 사망. - 장례와 애도
김구 선생 장례는 여러 논란 끝에 국민장으로 10일간 치러졌으며, 장례 둘레에만 약 40~50만 명이 운집했습니다 .
당시 조문객은 전국적으로 120만 명 이상이었으며, 서울뿐 아니라 타 지역에서도 많은 추모 행렬이 이어졌습니다. - 정부 공식 발표
군 당국 및 이승만 정부는 이 사건을 “한국독립당 내부 당파·내분으로 인한 우발적 암살”이라고 규정했습니다. - 진상 규명과 국회 조사
- 1992년 안두희의 육성 증언이 공개되었고,
- 1993년 국회에 백범암살진상조사위원회가 구성됨.
- 1995년 “사건은 단순 내분이 아닌 군부·정권 연루 모의였음”을 밝히는 보고서를 통과시켰습니다.


🕵️♂️ 의혹과 배후 주장
- 군부 개입설: 보고서에 따르면 사건 배후에는
- 포병사령관 장은산
- 육군특무대장 김창룡
- 총참모장 채병덕
- 헌병 부사령관 전봉덕 등
군부 고위 인사들이 포함되어 있었다고 합니다.
- 정권 묵인 의혹: 이승만 대통령의 정치적 묵인 없이 가능했을리 없다는 지적과,
내부적 ‘우익·반공 세력’의 무장 청년단 연관성도 함께 거론되고 있습니다. - 미국 정보 개입 여부: 조사 결과 "미군 정보가 일부 알고 있었으나 직접 개입 증거는 없다"고 결론지었습니다 .

🤔 사건의 의의와 후속 영향
- 정치적 충격: 건국 초 거대한 파장을 일으킨 사건으로,
김구의 죽음이 한국 정치의 나뉘어진 갈등 구조(친일청산 vs 정권안정)를 단적으로 보여줍니다. - 법적·사회적 재평가:
초기 정부 발표는 진실을 감추려는 의도가 다분했으나,
이후 1993~1995년 국회 조사로 정치적 음모 가능성이 밝혀지며 재평가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 결론
1949년 김구 암살 사건은 단순한 개인 범죄가 아닌, 정치·군사·정권이 얽힌 복합적 사건이었습니다.
백범의 죽음은 건국과 민주주의의 교차로에서 한국 현대사의 무게를 고스란히 드러낸 사건으로,
당시 정부의 은폐 시도에서 이후 국회의 진상 규명까지 이어진 과정은
한국 정치사에서 뼈아픈 일면으로 남아 있습니다.
이 글이 해당 사건의 배경과 의의를 보다 깊게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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